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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의 연결고리 슬램덩크

by Let Your IF ok 2023. 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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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슬램덩크 세대

나는 슬램덩크 세대이다. 축구 같은 땀 흘리며 운동하기는 좋아했지만 유독 농구는 정이가지 않는 스포츠였다. 하지만 이 만화책을 처음 봤을 때 신세계를 느꼈다. 상남 2인조, 그레이트 티처 오니즈카, 이런 싸우고 깨부수는 일본만화책과는 차원이 달랐다. 오히려 너무 순수했다. 강백호라는 시점에서 하나하나 성장해 가는 것을 응원했고 승리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슬램덩크는 자극적이지 않고 중고등학교 시절의 정말 열정적으로 나도 뭔가 하고 싶다는 느낌을 가득 받기에 충분한 그런 만화였다. 드래곤볼은 비현실적인 스토리지만 슬램덩크는 왠지 있을 것 같아서  더욱 좋아했다. 그래서 만화책을 닳도록 봤고, '물론 난 천재니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비디오가 나왔을 때 감고감고 또 감아 비디오가 늘어질 정도로 본 것 같다. 그땐 그랬던 것 같다. 마지막 산왕전은 언제든 '농구'라는 단어가 나오면 파블로프의 개처럼 자동반사로 떠올리는 기억이다. 마지막 서태웅과 강백호의 '왼손은 거들뿐'이라는 단어와 함께 말이다.

영화가 개봉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바로 가고 싶었지만 뭐가 바쁜지 갈 수가 없었다. 이놈의 출장, 회식 등 현실에 치여 알맞게 생활하고 있는 30대이다. 그러던 중 기자님이 쓰신 기사를 읽고 다음 주에는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 토요 칼럼 '너와 나의 슬램덩크' (매일경제)

원작자이자 극장판 감독인 이노우에 다케히코는 원작에서 조연에 불과했던 2학년 송태섭을 극장판의 주인공으로 불러왔다. 결코 평범하지 않았던 그의 가족사를 담담하게 들려준다. 단순히 원작의 동어반복을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사람들은 농구 천재 강백호, 팀의 에이스 서태웅을 더 강렬하게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송태섭은 그 긴 시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수천 번의 드리블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코트의 사각지대에 서 있는 우리에게 말한다. 영광의 순간은 누구에게나 온다고. 그 순간이 지금일 수 있다고.

 

3. 이야기의 끝? 새로운 시작

생각해 보면 강백호의 이야기를 계속 기다렸던 것 같다. 나의 슬램덩크 최고의 명장면은 마지막 산왕전이다. 작가의 표현면에서 과연 만화책의 정적인 그림으로 동적이고 격렬함이 이렇게 잘 보여줄 수 있는지 새삼 놀라고 빠져들었다. 스토리 역시 모든 것이 완벽했다고 생각한다. 서태웅의 성장, 감독님의 고백, 그리고 강백호의 영광의 순간까지 그 한 게임 안에 정말 모든 것이 쏟아져 들어가 있다고 느낀다. 그런 이야기가 승리했지만 이어지지 않은 쓸쓸함이 너무 컸다. 그래서 이후에 이야기가 궁금했다. '나의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강백호가 멋지게 코트로 컴백하는 그 모습을 다시 그려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응원했다. 하지만 긴 여운을 남긴 채 후속 이야기는 소문만 무성했고, 작가가 폐학교 칠판에 그 이후 이야기라고 해서 그림 그렸던 것이 아쉬운 마지막이었다. 그 마지막이 오히려 마지막 같지 않아서 더욱 아쉬웠고 그래서 더욱 애틋하게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이번 영화는 '송태섭'시점이라고 한다. 어쩌면 작가 '강백호'가 '나의 영광의 시대는 지금'이라고 말하는 것이 풋내기 농구천재 강백호로 그릴 수 있는 마지막이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탁월한 운동능력으로 갑자기 성장해가는 강백호의 이야기는 여기서 한숨 멈추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마지막 '물론 난 천재니까'라는 말은 나처럼 아쉬워하는 사람을 위한 위안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든다.

반면, 위 작가의 말처럼 빈 곳에서 묵묵하게 계속 농구만 했던 송태섭이다. 그리고 160키에 180 넘는 세터들을 상대해야 했던 송태섭의 시합을 준비하는 무게로 다른 시각으로 경기를 보여준다. 같은 산왕전이지만 같지 않은 시선을 보여줌으로써 이야기의 연속성과 향후 새로운 내용들이 연결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작가는 젊었을 때 그렸던 감정을 추스르며 새롭게 이야기를 써도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만큼 삶을 보는 눈이 다양해졌고 그로 인해 원작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았던 송태섭을 새롭게 발견한 건지 모르겠다. 

 


눈과 귀로 들리는 자극적인 것들보다, 텍스트로 읽고 머리로 상상되는 그래서 내 경험과 연결되는 감정을 요새 많이 즐기고 있다. 마음 뒤숭숭한 시점에 꾸준히 내 삶의 그림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만든 신문기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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